지난 주 인터넷을 잠깐 달군 글이 있었다.

저번 주 초에 잠깐 인터넷을 달구었던 글이 하나 있었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아직까지는 대통령이니깐)의 구속 취소 이슈로 인터넷 이슈는 완전 사라졌지만 해당 글이 작성된 블로그는 나도 종종 보던 곳이었기에, 그리고 평소와 다르게 너무나 흥했기 때문에 소개하고자 한다. 제목은 더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이었다. 해당 글은 시작부터 상당히 도발적이었다. 예를 들어 다음 대목과 같은 부분이 있었다.

...(전략) 하지만, 이보다 내가 더 걱정하는 게 있는데, 이건 바로 한국 직장인들의 근면, 성실함이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략) 하지만, 내 가장 큰 걱정은 우리가 투자하는 스타트업들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은 스타트업의 임직원분들이 일을 너무 안 한다는 것이다. 요샌 평일 오후 6시 이후에 불이 켜진 스타트업 사무실이 거의 없고, 주말은 당연히 아무도 안 나온다. (후략)

한국 직장인의 근면, 성실함이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그 이유는 평일 오후 6시 이후에도 일을 잘 안하고, 주말에도 안나오는 것을 내가 보았기 때문이다. 라는 주장이다. 솔직히 여기까지도 상당히 무리한 주장이지만 개인적인 경험이라면 그냥 끄덕일 수 있을 거 같지만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다음 부분이다.

(전략) 어디서부터 한국의 이런 근면성실함이 망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 대대적으로 고쳐야 하는 악성 코드이자 버그다. 주 52시간 꼬박 지키고, 워라밸 다 챙기면 우린 국가적으로 계속 후퇴할 것이다.

다들 이 부분에서 격노(?)하여 비판 또는 비판에 준하는 비난, 비꼼 등등을 남겼다. 나도 어느정도는 그러한 비판에 동의했고 말이다. 기본적으로 주 40시간에 초과근무 12시간을 허용하는 현 체제에 대해 자꾸 "주 52시간"이라는 레토릭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편견을 차지하고서라도 워라밸을 다 챙기면 국가적으로 후퇴할 것이라는 협박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가 그렇게 워라밸을 다 챙기는가? 에 대해서도 의문이고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저 부분보다 그 뒷 부분에 조금 더 관심을 가졌다. 뒷 부분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전략) 그동안 쌓아놓은 체력이 있어서 그나마 한국의 위상을 지키고 있지만, 덜 일 하고, 더 많이 노는 문화와 태도가 아예 정착되면 한국은 유럽이 가고 있는 길을 그대로 가게 될 것이다. 꽤 강대국이었던 유럽 대부분 국가는 아주 빠르게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데, 나는 그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유럽인들의 게으름이라고 생각한다. 일은 더 안 하고 정부에 요구하는 건 더 많아지면서, 이들은 여름휴가를 한 달 이상 가고, 세 시간 점심시간에 와인 한 병씩 먹으면서 삶의 질이 좋다고 하지만, 이건 오래 가지 못한다. 나라가 망하면 삶 자체가 없어지는데, 이걸 모르는지 아니면 그냥 될 대로 돼라 마인드인지 잘 모르겠다. (후략)

??? 유럽인들이 게으르기 때문에 유럽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라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이전 IMF 외환위기의 책임을 기업들의 방만한 경영이 아닌 국민의 사치로 돌렸던 한 초등학교 교과서의 문구를 생각나게 하기도 했다.

IMF 외환위기가 발생한 이유가 국민들이 사치해서라고 설명한 초등학교 교과서 중 일부. 링크

그렇지만 우리는 안다. IMF 외환위기가 발생한 이유는 기업들의 방만 경영으로 인한 무리한 차입이 문제가 된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해당 글의 주장이 정말 맞는 지 한번 확인해보자.

유럽의 쇠퇴가 유럽인들의 게으름 때문인가?

유럽 경제는 지금 안좋잖아?

이 주장은 사실이다. 다음 4개년 치 경제성장률 비교를 보아보자.

연도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미국중국일본대한민국
2020-21.9%-17.2%-3.83%-8.97%-10.8%-3.4%2.3%-4.8%-0.9%
202125.7%17.4%3.16%8.31%5.5%5.7%8.1%2.8%4.0%
20224.1%2.6%1.81%3.99%4.3%2.1%4.4%1.7%2.6%
20230.4%0.2%-0.30%0.92%4.1%2.1%4.4%1.7%1.4%

2024년 경제성장률 지표가 나온다면 더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 코로나 시절을 제외하고만 보더라도 유럽의 주요국가 경제성장률은 미국,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미 한참 전부터 지고 있던 상황이다. 특히 EU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인 프랑스와 독일의 역성장이 더욱 더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 EU의 미래를 더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지만 그게 게으름 때문인지는?

해당 글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분리할 수 있다.

  1. 유럽 경제는 쇠퇴하고 있다. 그 이유는 유럽인이 게으르기 때문이다.
  2. 유럽인은 게으르다. 왜냐하면 유럽인들이 다음과 같이 행동하기 때문이다.
    1. 일은 더 안 하고 정부에 요구하는 건 더 많아진다.
    2. 이들은 여름휴가를 한 달 이상 간다.
    3. 세 시간 점심시간에 와인 한 병씩 먹는다.

2-a는 어떤 기준을 세워야 "정부의 요구 횟수"가 다른 지역보다 높은 지 판단할 수 없을 거 같아 일단 제외하고 2-b와 2-c는 퍼플렉시티를 통해 다음과 같이 금방 찾아볼 수 있었다. 퍼플렉시티 짱 👍

지역/국가유급 연차 휴가
유럽 (오스트리아)22일 + 13일 공휴일
유럽 (스웨덴)최대 4주 연속
유럽 (독일)20일
유럽 (네덜란드)20일
유럽 (프랑스)25일
미국평균 16일 (고용주의 재량)
중국5일~15일 (근속 연수에 따라)
일본약 10일~20일
브라질30일 (연간 총 휴가)
호주최소 4주(20일)
국가평균 점심 시간
벨기에22분1
영국24분1
독일25분1
프랑스29분1, 2시간4
스페인54분(2012), 47분(2015)5, 2~3시간4
그리스3시간4

일단 두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유럽인들의 평균적인 유급 연차 기간은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1. 다만, 여기에는 유급 연차 기간 외 다른 휴가는 산입되지 않았으니 적절한 비교가 아닐 수도 있다.
    2. 따라서 2-b 근거는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2. 유럽인의 평균 점심시간과 유럽 직장인의 평균 점심시간은 조사 방법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1. 남유럽(스페인, 그리스, 그리고 프랑스?) 지역의 경우 2~3시간의 점심시간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고 조사기도 함.
    2. 하지만 유럽 직장인을 기준으로 조사했을 때 다른 국가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3. 따라서 2-c 근거는 틀린 근거가 된다.
  3. 해당 근거의 오류, 또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유럽인은 게으르다."는 주장은 틀린 주장이다.

더 나아간다면?

해당 글의 근거의 오류만을 가지고 해당 주장은 틀렸다고 말했지만, 더 나아가서 이런 말을 해볼 수도 있다.

"유럽인들이 게으르다고 하는데, '게으르다'의 기준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상대방이 게으르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노동생산성? 다음 수치만 본다면 대한민국 사람은 유럽 사람에게 게으르다고 하면 안된다. 우리는 그렇게 무시하는 남유럽 국가의 노동생산성보다 더 적은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대체 어떠한 기준으로 남을 게으르다고 평가하는 지 알 수가 없다.

국가노동생산성 (GDP per hour worked)
87.30 USD
87.30 USD
98.30 USD
60.00 USD
60.00 USD
49.00 USD
52.40 USD
16.10 USD
51.26 USD
97.00 USD
87.20 USD
60.00 USD
25.47 USD
60.00 USD
25.47 USD
40.28 USD

현상에 뇌피셜을 끼워넣지 말 것

여기까지 해당 글의 주장과 근거를 잠깐 분석해보았다. 분석 결과 해당 글의 필자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유럽인들이 게으르다는 근거를 찾아볼 수 없고 더 나아가 유럽의 평균 노동생산성은 우리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유럽의 경제 쇠퇴는 다른 쪽에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다면 해당 글이 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게 말하면 "어떠한 현상에 대해 자기 마음대로(또는 자기가 원하는대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상에 대해 제대로된 분석을 할 수 없었고(또는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뻘글이 탄생하고 만 것이다.

그러니 오늘의 결론. 현상에 뇌피셜을 끼워넣어 자기 마음대로 글을 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