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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은 생각보다 쉬운 영화입니다.
유튜브에 보면 영화 <듄>에 대해서 많은 해설 영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해설서는 <듄 백과사전>이라는, 한국어 번역은 아직 되지 않은 책을 기반으로 해설하고 있고, 한국어로 번역된 <듄의 세계>라는 배경 안내서도 있습니다.
이러한 해설을 보지 않았다는 가정 아래, 이 영화의 등장 세력과 장치들이 어떤 것을 비유하는 지 한번 맞추어볼까요? 프레멘은 누가 봐도 아랍의 유목민입니다. 그들의 땅에서 나오는 스파이스라는 자원은 석유겠군요. 그러면 제국은? 하코넨은?
조금 더 들어가볼까요?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세력이 있지만 듄에서 중요한 플레이어는 레토 공작이 이끄는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극 중에서는 이름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만) 블라디미르 하코넨 남작이 이끄는 하코넨 가문입니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고전적인 귀족의 느낌을 굉장히 강하게 주는 가문이고 숲과 바다가 가득한 곳에서 아르키스라는 행성으로 옵니다. 아마도 "영국" 또는 "미국"에 비유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반면에 하코넨 가문은 원래 황량한 아르키스로 부를 쌓은 가문입니다. 그들은 무채색의 사람들이며, 모두 머리카락을 밀어버려 몰개성합니다. 그들의 사열 장면을 보면 마치 레니 리펜슈탈 감독의 <의지의 승리Triumph des Willens, 1935>를 보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아마 "나치 독일"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영국으로 놓고 보면 떠오를만한 영화가 하나 있을 겁니다. 한 영국인이 난폭한 제국의 통치 아래에 고통받는 아랍 원주민에게 접근해 그들의 방식을 배우며 동화되고 그들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이야기... 오 이런, 데이비드 린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 1962> 군요. 실제로 원작 듄이 최초로 발매된 것은 1965년이니 원작자인 프랭크 허버트가 보고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크죠.
이정도만 해도 여러분은 듄을 많이 알게 되었군요. 하지만 조금 더 생각을 해보죠.
<듄>은 생각할만한 것이 많은 영화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읽으실 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과 그리스 신화는 헐리우드 영화의 주요 플롯입니다.
헐리우드 영화를 비롯하여 서양의 영화을 볼 때 팁을 하나 드리자면 그리스 신화 또는 성경을 알고 계신다면 본인이 알고 있는 이야기과 보고계신 영화를 한번 비교해보세요. 예를 들어 <인셉션>을 생각해볼까요? 주인공인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는 꿈의 세계에서 헤메게 됩니다. 그런 그를 끌고 나오는 것은 아리아드네엘런 페이지 역죠. 누가 봐도 그리스 신화의 "크레타 미궁" 이야기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아예 이름까지 같게 썼을 정도로 노골적으로 차용한거죠. 이렇게 많은 서양 영화는 그 원전을 그리스 신화나 성경에서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듄은 어떤 이야기를 가져왔을까요? 이것도 너무 노골적입니다. 선지자, 메시아... 아예 단어로 폴 무앗딥이 어떤 인물을 묘사했는 지 알려줍니다. 바로 "예수"죠.
노골적인 언급 이외에도 폴 무앗딥 = 예수라는 등식을 성립시키는 설정은 또 있습니다. 가문이 망해 사막으로 던져지는 것은 예수가 광야에서 금식하며 고행을 하게 되는 것과 같은 시련이며, 생명의 물(이라고 읽고 사실은 어린 모래벌레의 피인)을 마시고 죽다 살아나는 건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 매우 흡사합니다. 부활 이후 사람들을 이끄는 선지자가 되는 건 말을 더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예수를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여기서 듄은 하나를 더 추가하면서 이야기가 비틀어집니다. 바로 베네 게세리트Bene Gesserit 입니다.
결정된 미래만이 존재하는 세계
사실 <듄>의 세계에서 가장 신과 같은 존재라고 한다면 베네 게세리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훈련을 통해 자기 신체에 대한 완벽한 통제가 가능하며, '목소리'를 통해서 타인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자기들의 존속과 목적을 위해 잉태할 아기의 성별도 정할 수 있어 황제와 대가문조차 베세 게세리트의 '유전자 배양'이라는 목적의 수단으로 사용되죠. 그리고 모계의 기억을 물려받을 수 있죠.
이런 이들의 목적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인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이죠. 그들이 끊임없이 유전자를 수집하는 이유도 퀴사츠 헤더락Kwisatz Haderach 이라는 초인을 탄생시키기 위함입니다. 퀴사츠 헤더락은 미래를 완벽하게 볼 수 있죠.(더 자세한 설정이 있지만 영화에서는 따로 설명을 안하니깐 여기서도 설명은 안할겁니다.)
폴 무앗딥이 스파이스를 흡입하면서 얼핏 본 미래는 끔찍합니다. 전쟁을 통해 수십만, 수천만, 수억명이 죽어나가는 미래죠. 폴 무앗딥은 그 미래를 피하기 위해 남쪽으로 가지 않으려하지만 운명은 그를 남쪽으로 이끌었고, 생명의 물을 마시고 퀴사츠 헤더락이 되었죠. 폴 아트레이데스의 미래는 결정된 것이었고 그러한 미래를 피하고자 발버둥쳐도 결국은 그 미래로 향해버렸죠. 모든 것은 결정된 것이었을까요?
<듄>에서 레이디 제시카는 베네 게세리트가 딸을 낳으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레토 아트레이데스의 바람대로 아들을 낳았다고 말했습니다. 아들을 낳은 것은 오로지 레이디 제시카의 자유의지였죠. 하지만 정말로 그게 자유의지였는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폴 아트레이데스, 폴 무앗딥이 퀴사츠 헤더락이 될 운명이었다면 레이디 제시카가 아들을 낳은 것도 운명이었을테니깐요.
그렇다면 이런 퀴사츠 헤더락을 억지로 만들려고 했던 베네 게세리트라는 집단은 매우 어리석은 자들이 될 수 밖에 없을겁니다. 본인들이 제어할 수 없는 완벽한 초인을 만들고자 한 집단이니깐요. 신이 보기에 신을 만드려는 집단이 얼마나 우스울까요.
그렇습니다. 제가 보는 <듄>의 세계는 신이 있는 세계관입니다. 성부와 성자가 같은 것처럼 듄의 세계의 신이 퀴사츠 헤더락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계관은 분명 신이 있고 신의 결정에 따라 인물들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주를 뛰노는 인간들이라 할 지라도 신 아래 있는 인간이라니, 참으로 암울하기 그지 없네요.
제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저건 그저 제 의견일 뿐이니깐요. 각자 영화를 보시고 생각하여 저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훌륭한 경험일 것입니다. 다만 제 의견이 참고정도만 되면 나쁘지 않을 거 같다고 생각합니다.
<듄: 파트 투>는 정말 훌륭한 영화입니다. 음악과 영상이 매우 잘 어우러지고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합니다. 이야기의 템포가 조금 지루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러한 템포도 이해시킬 정도로 연출이 뛰어납니다. 아이맥스 촬영분도 훌륭하기 때문에 아이맥스로 보면 더 훌륭한 영상을 보실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듄>의 영화화 그 자체입니다. 듄의 원작자 프랭크 허버트Frank Herbert, 1920~1986가 생전 <듄>을 썼고 <듄>은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바이블이 되어 수많은 걸작들을 탄생시켰지만 듄을 제대로 영상화할 수는 없었죠. 1974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Alejandro Jodorowsky Prullansky 감독이 만들려고 했다 무산된 것부터 시작해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 감독이 만든 1984년 작 <듄>도 제대로 된 영화화는 아니었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방대한 <듄>을 영화관에서 이익을 거두기 위한 2시간 내외로 편집한다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고 1984년 작은 4시간 정도의 길이가 편집과정에서 마구 도려내져 데이비드 린치가 만든 영화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죠.
그렇기에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 감독은 듄을 거의 완벽하게 영화화한 감독이라고 말할 수 있을겁니다. 물론 그도 이야기 압축에는 실패하여 한 영화가 2시간 40여분으로 구성된 3부작 영화로 만들고는 있지만 그래도 제대로 투자받아 성공하였으니깐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한국에서는 100만명 관객을 넘었고, 월드와이드로는 2억불의 수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영화가 충분히 흥행하여 다음 영화까지 잘 마무리되어 3부작의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