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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풀과 울버린Deadpool & Wolverine, 2024을 보고 왔습니다. 영화 자체가 가진 스포일러와 메타성이 강해, 스포일러 없이는 영화 배경에 대한 설명과 제 감상을 도저히 남길 수 없을 거 같아 미리 스포일러 경고를 하려고 합니다.
※ 해당 리뷰는 강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절대로 주의해주세요.
일단은, 충실한 버디 무비
일단 가장 큰 틀에서, 데드풀과 울버린은 버디 무비의 문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료를 찾고, 문제가 많은 동료였지만 대화를 통해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마지막에 드디어 합을 맞춰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영화죠. 꼭 이번 영화뿐만 아니라 데드풀Deadpool, 2016, 데드풀2Deadpool 2, 2018 모두 이런 내용이죠. 데드풀에서는 콜로서스와 네가소닉 틴에이지 워헤드, 데드풀 2에서는 케이블과 도미노였죠.
그런데 데드풀에게는 다른 슈퍼 히어로와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로 제 4의 벽을 넘나든다는 점이죠.
제 4의 벽?
제 4의 벽이란, 18세기 프랑스의 작가 드니 디드로가 주창한 개념으로 원래 연극에서 온 개념입니다. 연극 무대를 구성하는 3개의 벽 외에도 무대와 관객 사이에 벽이 있어야 하지만, 그러면 관객이 무대를 볼 수 없으니까 실제로는 비워두되 가상의 벽이 있는 것처럼 배우들도 연기하고 관객들도 관람하는거죠. 이런 무대와 관객 사이의 가상의 단절을 제 4의 벽이라고 했던건데, 이러한 개념이 클리셰적으로 사용된다면 당연히 이를 비트는 시도도 했겠죠? 그것도 많이?
데드풀의 이러한 제 4의 벽을 넘나드는 능력은 코믹스에서부터 사용되었습니다. 당연히 주변인들은 그를 미친 사람처럼 취급하지만, 코믹스를 보는 독자들은 데드풀과의 대화에 참여하게 되는거죠. 이러한 능력은 지난 영화에서도 훌륭하게 적용되었지만, 이번에는 특히 더 중요하게 작동하였습니다. 영화 외적으로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거든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1. 디즈니의 20세기 폭스 인수
첫 번째로, 데드풀을 비롯한 엑스맨 전체와 판타스틱 4의 판권을 가지고 있는 20세기 폭스가 디즈니에게 인수되었죠. 80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영화사였지만, 그보다 더 오랜 역사와 돈을 가지고 있는 디즈니에게 흡수 합병되면서 미국 미디어 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킵니다.
디즈니는 이로서 마블 코믹스의 판권 대부분을(스파이더맨을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스파이더맨 세계관 전체의 판권(베놈이라던가, 실크라던가)은 소니에게 있지요.) 소유하게 됩니다. 그게 마침 인피니티 사가의 마지막을 장식한 어벤져스: 엔드게임Avengers: Endgame, 2019와 같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디즈니의 욕심을 읽을 수 있었죠.
2. 멀티버스 사가의 폭망(...)
하지만, 인수한 건 인수한거고 세계를 어떻게 합치죠? 이에 대한 대답으로 마블 스튜디오는 멀티버스Multiverse를 꺼내옵니다. 이제는 친숙한 다중세계관이죠. 참고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지구-199999이고 마블 코믹스의 오리지널 세계는 지구-616이라고 합니다. 여튼 이러한 다중세계를 끌고 오면서 인피니트 사가 이후를 준비했지만... 결과만 보면 실패했죠. 실패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a. 너무나도 많이 쏟아지는 작품
2019년 엔드게임이 끝나고, 갑자기 세상에도 엔드 게임이 몰아닥치기 시작합니다. 코비드-19 감염증이죠. 이 때문에 극장에 관객이 사라지고, 넷플릭스가 커지고, 그래서 디즈니도 디즈니 +를 런칭합니다. 그리고 디즈니 +의 메인 컨텐츠 중 하나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세계관의 드라마화를 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컨텐츠의 홍수는 곧 피로감으로 다가오게 되었죠
b. 매력 없는 새로운 캐릭터들
더 나아가서, 새로 추가되는 캐릭터 중에서 이전 마블 영화를 꾸준히 보아왔던 사람들을 사로잡을만한 캐릭터가 없다는 점도 문제를 가중시켰죠. 흔히 유투버들이 편의주의적으로 말하는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이 문제가 아니라, 캐릭터들의 설득력이 부족한 게 문제였습니다.
어중간한 파워를 가진 슈퍼 히어로물(샹치)에서는 주인공인 샹치보다 악역인 웬우가 더 눈에 띄어버리고 사실 이건 웬우로 양조위를 캐스팅하고 샹치로 시무 리우를 캐스팅한 놈들이 잘못했지 짱짱 쎈 놈들을 데려와 버리면(이터널스) "그래서 왜 걔네들은 타노스 쳐들어왔을 때 뭐 했대?"라는 지옥의 이지선다를 벗어날 수 없었죠.
c. 매력적인 캐릭터의 병크
그래도 희망은 있었습니다. 타노스의 뒤를 이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관통하는 메인 빌런이 될 정복자 캉이 꽤 매력이 있었거든요. 드라마에서의 조나단 메이더스의 연기가 너무나도 훌륭했기에 사람들은 메인 빌런으로서의 캉을 기대했고, 마블 스튜디오도 어벤져스 5를 "어벤져스: 캉 다이너시티"라고 발표하면서 기대감을 부추겼죠. 하지만...
여자친구 폭행으로 인해 유죄를 받고 마블 영화에서도 하차했습니다. 망했어요
3. 울버린의 은퇴와 엑스맨 흥행 실패
마지막으로, 20세기 폭스 마지막에 벌어졌던 내용도 문제였습니다. 엑스맨에서 가장 인기있는 캐릭터인 울버린을 연기한 휴 잭맨이 정말로 멋지게 은퇴했습니다. 영화 로건Rogan, 2017을 통해서 말이죠. 물론 18년동안 울버린을 했으니 멋지게 은퇴할만하죠.
그런데 엑스맨: 데이 오브 퓨처 패스트 이후로 엑스맨: 아포칼립스, 엑스맨: 다크 피닉스가 연 이어 부진하게 됩니다. 특히 다크 피닉스는 흥행까지 실패했고, 그 이후에 나오기로 했던 뉴 뮤턴트는 대충 개봉시키고 대충 망해버렸죠.
디즈니의 20세기 폭스 인수와, MCU의 멀티버스 사가의 흥행 부진, 울버린의 은퇴와 이젠 더 나올 엑스맨도 없는 상황 속에서 데드풀에게 주어진 미션은 어찌보면 데드풀이라는 히어로의 사이즈에게는 너무나도 버거운 상황이었습니다.
※ 이제부터 스포일러 진짜 있어요. 본 사람과 상관없는 사람 빼고 보지마!
Maximum Effort!
결론부터 말하자면, 데드풀과 울버린은 완벽하게 재미를 가져다주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리고 저 위의 모든 문제들을 한번에 정리하지도 못했죠. 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성공한 영화입니다. 덮어두기만 했던 문제를 대놓고 까 뒤집어서 털어버리고 어느정도는 정리해버렸죠. 하나하나씩 이야기해볼까요.
1. 로건? 나는 울버린을 데려왔는데... 근데 너희들은 누구?
데드풀과 울버린 첫 장면은 로건의 마지막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울버린이 묻힌 무덤을 파내고 뼈만 남은 울버린을 확인하고 절규하는 데드풀이죠. 이는 로건에서 받았던 여운을 휙 던져버립니다. 누군가는 가필加筆, 덧대어 씀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뭐 어때요. 멀티버스인 거 모르는 사람 없잖아요?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 하나. 여기는 아직까지 20세기 폭스의 멀티버스라는 점이죠.
보이드(Void)에 떨어진 이후부터는 더욱 더 멀티버스가 섞이기 시작합니다. TVATime Variance Authority, 시간 변동 관리국의 말대로 "망하거나 잊혀진 것들"이 들어있는 세계죠. 그리고 망하거나 잊혀진 영화는 어느 스튜디오나 있는 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가 섞이는 게 가능합니다.
데드풀이 캡틴이라고 좋아하던 크리스 에반스는 "플레임 온!"을 외치면서 휴먼 토치가 됩니다(...) 잡혀서 간 아지트에는 엑스맨: 최후의 전쟁의 저거너트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아자젤이 있습니다. 탈출한 뒤에 도움받은 저항군은 블레이드, 엘렉트라, 그리고 X-23입니다. 아예 영화로 만들어지지도 못한 겜빗도 있네요. 죽어버린 데어데블은 벤 애플렉을 캐스팅 못해서 그런거겠지
패러독스가 망한 세계를 빨리 없애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 카산드라 노바가 다 망해버려 보이드가 되길 바라는 것에 대해 데드풀과 울버린은 저항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그들의 세계가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그들 말대로 그 세계는 분명 가치가 있는 영화였습니다. 성공했든 망했든 마블 코믹스는 꾸준히 영화화되었고 그 덕분에 MCU까지, 인피니티 사가까지 온 것이니깐요.
2. 설정 좀 그만 추가해! 우리까지만 넣고(?)
데드풀은 20세기 폭스에서 현재의 MCU로 넘어오게 되죠. 그리고 현재의 꼬라지를 보고 한 마디 합니다. "3편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설정 추가하고 앉아있어?" 이건 현재의 MCU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기도 하죠. 아이언맨이 나온 게 2008년이고 어벤져스가 나온 게 2012년입니다. 벌써 10년이 넘은 시리즈인데 멀티버스라는 이유로 설정만 덕지덕지 붙이고 있으니, 보던 사람들도 더 이상 못 쫒아갈 수 밖에 없고 나가 떨어지게 되는거죠. 이에 대해서 지금 시점에 아주 적절한 비판을 날린거죠.
하지만 20세기 폭스의 합류 자체가 설정을 늘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데드풀은 영화 초반부에 선언하죠. "나는 디즈니랜드로 간다!" 우리 가는 건 어쩔 수 없으니 봐달라는 귀여운 선언입니다. 그리고 팬들의 마음에도 드는 선언일거에요. 쓸데없는 멀티버스보다는 백 배 나으니깐.
결론: 헐겁지만 정겨운 캐릭터가 나오는 즐거운 영화
아까도 말했지만 모든 것이 완벽한 영화는 아닙니다. 중반부 이후로는 힘이 조금씩 빠지기도 하고, 괜히 쓸데없는 장면도 있고, 더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MCU의 팬이라던가, 마블의 팬이라던가, 슈퍼히어로 영화의 팬이라면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겸사겸사 20세기 폭스가 MCU로 연착륙할 수 있게 만들어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잘 봤어요, 라이언 레이놀즈!
P.S.
데드풀을 통한 연착륙을 생각했는데 MCU쪽이 상당히 급하긴 급한가봐요.
오늘(2024년 7월 28일) 샌디에이고 코미콘에서 대형 발표가 터졌네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MCU에 복귀합니다. 아이언맨이 아닌 닥터 둠Doctor Doom 을 맡게 되고, 어벤져스 5는 어벤져스: 캉 다이너스티에서 어벤져스: 둠스데이로 변경됩니다.
아무래도 판타스틱 4를 통한 경착륙, 그리고 시크릿 워즈로 바로 돌진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