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깃발이 필요한 이유
어디에서든 자유와 독립의 깃발이 휘날리는 곳이라면, 그곳에 우리의 마음,
축복, 그리고 기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떠도는 괴물을
찾아다니며 물리치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이의 자유와 독립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자이지만, 또한 자신만의 자유와 독립의 옹호자일 뿐이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목소리와 긍정적인
본보기를 통해 자유의 대의를 지지할 것이다.
우리는 만약 외국의 독립이라 할지라도, 다른 깃발 아래에 서게 된다면, 모든 이익과 음모, 탐욕, 질투, 야망이 자유의 이름을 빌려 일으키는 전쟁 속에서
우리 스스로를 구할 수 없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의 정책의 근본적인 원칙은 서서히 자유에서 힘으로 변화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우리는 세계의 지배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영혼을 지배할 수 없을 것이다.
- 존 퀸시 애덤스의 미국 외교 정책에 대한 연설, 1821년 7월 4일
연설 전문
AND NOW, FRIENDS AND COUNTRYMEN, if the wise and learned philosophers of the elder world, the first observers of nutation and aberration, the discoverers of maddening ether and invisible planets, the inventors of Congreve rockets and Shrapnel shells, should find their hearts disposed to enquire what has America done for the benefit of mankind?
Let our answer be this: America, with the same voice which spoke herself into existence as a nation, proclaimed to mankind the inextinguishable rights of human nature, and the only lawful foundations of government. America, in the assembly of nations, since her admission among them, has invariably, though often fruitlessly, held forth to them the hand of honest friendship, of equal freedom, of generous reciprocity.
She has uniformly spoken among them, though often to heedless and often to disdainful ears, the language of equal liberty, of equal justice, and of equal rights.
She has, in the lapse of nearly half a century, without a single exception, respected the independence of other nations while asserting and maintaining her own.
She has abstained from interference in the concerns of others, even when conflict has been for principles to which she clings, as to the last vital drop that visits the heart.
She has seen that probably for centuries to come, all the contests of that Aceldama the European world, will be contests of inveterate power, and emerging right.
Wherever the standard of freedom and Independence has been or shall be unfurled, there will her heart, her benedictions and her prayers be.
But she goes not abroad, in search of monsters to destroy.
She is the well-wisher to the freedom and independence of all.
She is the champion and vindicator only of her own.
She will commend the general cause by the countenance of her voice, and the benignant sympathy of her example.
She well knows that by once enlisting under other banners than her own, were they even the banners of foreign independence, she would involve herself beyond the power of extrication, in all the wars of interest and intrigue, of individual avarice, envy, and ambition, which assume the colors and usurp the standard of freedom.
The fundamental maxims of her policy would insensibly change from liberty to force....
She might become the dictatress of the world. She would be no longer the ruler of her own spirit....
[America's] glory is not dominion, but liberty. Her march is the march of the mind. She has a spear and a shield: but the motto upon her shield is, Freedom, Independence, Peace. This has been her Declaration: this has been, as far as her necessary intercourse with the rest of mankind would permit, her practice.
저번 박근혜 탄핵때도 그랬지만 이번 윤석열 대통령(아직까지는 대통령이니깐) 탄핵 집회에서도 각자 다채로운 깃발을 들고 왔다. 지금은 유명해진 불꽃남자 정대만 깃발부터 별의별 이상한 깃발이 다 나오고 있다. 솔직히 보는 재미가 있어서 집회에 가게 되더라도 깃발부터 찍는 나를 보게 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런 가지각색의 깃발을 가지고 나오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로는 '자신의 의견이 침범당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집단에는 항상 그 집단을 상징하는 "기(旗)"가 있다. 대한민국은 태극기가 있고 미국은 성조기가 있다. 나라가 아닌 더 작은 단위에도 깃발은 항상 존재한다. 전통적으로는 군 부대마다 부대기가 있다. 학교에는 교기가 있고 회사에도 회사를 상징하는 깃발이 있다. 즉, 기는 집단과 동일시된다. 우리는 항상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었고, 그 말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어느 깃발 아래에 항상 있었다는 뜻이다. 그것이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이다.
집회는 '어떠한 집단의 정치적 주장을 말하기 위한 모임'이다. 그러기 때문에 보통 집회도 집단이 주도해서 진행하게 된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 모이는 집회'같이 거대한 담론이 모이는 집회는 경우가 다르다. 수많은 각론에도 불구하고 '일단 탄핵시켜야한다.' 라는 대의 아래 모이는 것이니깐. 물론 이 집회를 주도하는 집단은 있고 나는 그 집단을 존중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 집단에 소속되고 싶지는 않다. '집단에 소속되지만 개인으로서의 나'를 버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러한 고민의 답이 바로 저 깃발들이라고 생각한다. 아무 연합이라도 만들어서 나 자신이 해당 연합의 1인 회원으로서 깃발을 들면 아무 문제가 없게 된다. 나는 집회의 주도 집단과 대등한 집단이 된다. 더 나아가 '정대만'의 이름을 걸어도 문제가 없다. 불꽃남자는 그런 것이니깐. 나의 깃발 아래에서는 내가 주인공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탄핵 집회에서 이견으로 인한 충돌이 있었다고 들었다. 이견에 대한 옳고그름을 떠나, '총론에는 동의하지만 각론에는 동의하지 않는' 이 상황 속에서 개인은 어떻게 해야할까? 서두에 남긴 존 퀸시 애덤스가 말한 '남의 깃발 아래에 섰을 때 스스로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전이라면 그냥 그 자리에 남아있거나 아예 참여하지 않는 두 방향으로만 진행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집회에 가게 되어봐야 나는 개인이 아닌 '그 집단의 깃발 아래 있는 무언가'일 수 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깃발을 든 사람들은 깃발을 들고 떠나 다른 집회로 가서 참여하면 된다. 나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는 그곳이 내 의견이 서 있는 곳이고, 나는 여기에 일기당천의 마음으로 참여한 '개인이자 집단인 무언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깃발'이 가지고 있는 힘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금 더 창의적인 개인만의 깃발을 가지고 많이 참여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
그리고 그러니 제발, 운동하는 사람들은 연대의 힘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지 말자. 설령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정말 옳은 일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그것이 깃발을 들고 연대하러 온 사람들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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